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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랑말랑 일상

제가 뭐 그렇게 커다란 영향력을 가진 사람은 아니지만...

(당황)

안경하세요, 동방 프로젝트 비공식 한글패치 제작자 𝕭𝖊𝕲𝖊𝖒입니다.

 

일상 게시판에 자기소개글 다음으로 올리는 첫 글이 이런 내용이라니 좀 떨떠름하네요... 그래도 할 말은 해야 하니까 써 보자면, 현재 네이버의 동방 프로젝트 커뮤니티인 '동방넷'이 모종의 이유로 조금 소란스럽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https://blog.naver.com/zo2407/222860390754 를 참고해 주세요. 저는 직접적으로 관계되어 있지는 않습니다만, 그래도 미약한 영향력이나마 발휘하고자 몇 자 끄적여 보고자 합니다. 서론은 그래도 한글패치 제작자답게 한글패치에 대한 이야기로 물꼬를 터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 옛날, wz1054라는 아이디를 가진 유저가 요요몽, 영야초, 풍신록의 텍스트 한글패치를 제작하여 공개하였습니다.

당시에는 한글패치는커녕 스토리도 간신히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언어 장벽이 높았던지라, 이 패치의 등장은 엄청난 파란을 불러왔어요. 심지어 이 분이 동방넷에 직접 올린 게 아니었어요. 당시 반혼접이라는 닉네임으로 활동 중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 네임드 유저분이 올리면서 알려지게 되었죠.

그러다 제작자분이 직접 한글패치 툴을 제작하여 동방넷에 배포를 하셨습니다. 게임 상에 텍스트가 나오면 그걸 실시간으로 잡아내어 번역문을 입력 또는 출력할 수 있는 툴이었어요. 저는 그걸 기반으로 게임 플레이를 하지 않아도 번역문을 모두 볼 수 있었던 문화첩부터 시작하여 한글패치 제작을 시작하게 됩니다. 홍마향, 지령전, 성련선을 이 툴을 이용하여 만들게 되죠.

성련선 한글패치를 만들고 난 뒤, 한글패치 툴이 업데이트됩니다. 이 툴이 wz1054님의 동방 관련한 거의 마지막 활동이 되었을 거에요. 그도 그럴 게 이 툴, 말만 업데이트지 사용법도 어려워지고 기능도 많이 사라져 버렸거든요. 하지만 기존 툴은 성련선 이후의 작품을 지원하지 않았기에 반쯤 어쩔 수 없이 한글패치 툴을 바꾸어 제작하게 됩니다.

 

그리고 신령묘가 나올 즈음, 국내 동방 프로젝트 커뮤니티에 이미지 한글패치 툴이 유입됩니다. thtk라 불리는 이 앱은 동방 한글패치 계의 2대 천왕이신 맘마미야님께서 처음으로 발굴, 도입하셨죠. 아쉽게도 무슨 작품으로 이미지 한글패치의 물꼬를 트셨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여하간 그 분께 저 또한 thtk의 사용법을 전수받고, 성련선부터 이미지 패치 작업을 하기 시작합니다. 아마 지령전 이전의 작품들은 맘마미야님에 의해 패치가 된 걸로 알고 있어요. 그래서 홍마향부터 지령전까지는 저도 건드리지 않고, 성련선 이후 작품들부터 제가 한글패치를 제작하게 되죠.

요정대전쟁의 경우는 조금 달랐는데, 나오고 나서 얼마 안 되어 다른 유저에 의해 텍스트 한글패치가 발빠르게 제작되었습니다. 저는 그래서 이미지만 패치를 하고, 그 유저분과 협의 하에 통합판 한글패치를 내놓게 되었죠. 그리고 신령묘 한글패치도, 요정대전쟁 때보다도 더 발빠르게 통합 패치를 내놓으신 분이 등장하는 바람에, 한 발 늦게 제 패치를 공개하면서 두 개의 패치가 존재하는 첫 작품이 되었습니다.

맘마미야님은 이 thtk 툴과 가지고 계신 프로그래밍 지식을 기반으로 격투 게임까지 손을 대셨는데, 덕분에 작업에 한계를 느끼시고 휘침성 때부터는 저에게 긴히 연락을 해 주셨습니다. 패치를 도와달라고... ㅋㅋㅋㅋㅋㅋ

당시 thtk의 휘침성 대응이 생각보다 많이 느렸는데, 맘마미야님께서 직접 thtk를 개조하여 휘침성에 대응시키고 저에게 전달해 주셨죠. 덕분에 휘침성부터는 다른 경쟁자(?)도 없이 저 혼자 동방 프로젝트의 한글패치를 전담하게 되었습니다. 보통 경쟁이 사라지면 독점시장이 되면서 가격이 폭등하든 질이 떨어지든 할 텐데, 다행히도 (?)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고 현재까지 꾸준히 한글패치를 제작하고 있게 되었네요. 천공장 한글패치를 만들 적에는 InstallShield 설치 마법사를 도입하기도 하고, 게임 별로 실행을 독립적으로 할 수 있게도 만들고, 대대적인 업데이트도 진행하고... 이 업데이트 때 위에 설명한 요정대전쟁의 통합판 한글패치에서 텍스트 패치를 모두 제가 다시 작업하여 내놓기도 하였죠.

 

그러다가 thcrap이 등장합니다. 단순히 언어 패치만이 아니라 게임 시스템 전반을 조작할 수 있는 공전절후의 패치 툴이죠. 이 툴을 국내에 알리신 유저분께서 제게 여태까지 만든 한글패치를 모두 thcrap으로 이식하고 싶다는 요청을 해 오셨고, 당시에 이미 국내 동방 팬덤은 사양길에 접어들고 있었던지라 조금이라도 부흥이 일어난다면 저는 바랄 게 없었기에 콜을 외쳤습니다. 그래서 성련선부터 천공장까지의 thcrap 패치는 저의 손길이 제법 많이 묻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툴의 가장 커다란 장점인 "위키위키 기반 패치 데이터 호출" 시스템이 저에게는 단점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번역문의 일부가 수정되기도 하고, 아예 다른 걸로 바뀌기도 하고 그러더라구요. 제가 직접 올린 것도 아니었고, 이식 요청이 있었을 당시 충분히 예상하기도 했습니다만 예상과 현실은 제법 달랐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건 스펠 카드를 표기할 때 사용하는 부호인 낫표(「」)의 큰따옴표("")화였죠. 아무래도 thcrap이 영어권에서 가장 성황리에 구르고 있는 툴이다 보니 영어 패치가 상당히 빠르고 양질인데, 영어권에서는 낫표를 문장 부호로 사용하지 않다 보니 이것을 큰따옴표로 바꿔서 씁니다. 이걸 굳이 낫표가 문장 부호로 존재하는 한국에다가도 옮겨와서 낫표가 모조리 지워지게 됩니다.

저는 제가 만든 패치가 이렇게 마구잡이로 수정되는 것이 탐탁치 않았던지라, 귀형수부터는 애초에 thcrap에 패치 작업자도 새로이 유입되었으니 더 이상의 thcrap 이식을 불허한다는 입장으로 돌아서게 되었죠. 최근에 제가 패치를 제작한 불렛필리아들의 암시장도 패치 툴은 thcrap이지만, 서버와는 일절 관계가 없이 독립적으로 실행되게끔 제작하였고요.

그렇게 thcrap 기반 패치와 제가 제작하는 패치의 양대 산맥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뭐 제 입으로 양대 산맥이라고 하니까 좀 쑥스럽긴 한데... 사실상 두 가지 말고는 제가 아는 한 한글패치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보니... 그냥 무주지 선점인 셈이죠.

 

쓰다 보니 잡소리가 제법 길었네요.

 

제법 장황하게 이야기를 늘어놓았는데, 제가 위에 적은 저 문화첩 한글패치를 제작한 때가 무려 2009년입니다. 자그마치 13년 전 일이네요. 동방넷이 생겨나고서 1년이 지난 뒤였습니다. 제가 동방에 입문한 건 2007년이었고, 동방넷이 생겨난 건 2008년... 이것도 제가 직접 말하기는 좀 쑥스럽지만, 생각보다 제법 잔뼈가 굵은 원로 멤버... 그러니까 틀딱인 셈이죠. ㅋㅋㅋㅋㅋㅋ

 

틀딱답게 라떼 이야기를 하자면, 동방넷의 시초는 '파란'이라는 플랫폼이었습니다. 약간 지금의 다음 비슷한 입지라고 보면 되려나요? 그런데 이 플랫폼이 없어진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사하게 된 곳이 바로 동방넷이었죠. 커뮤니티 이름도 당시에는 '파란 동방프로젝트'였는데 이사를 오면서 동방넷이 되었습니다. 이게 이름만 동방넷이 아니고 실제로 당시 초대 수장이었던 유이님이 tongbang.net이라는 도메인을 사들여서 운영했었어요. 그 뒤로 동방넷의 규모가 점점 커져 가고, 별거 아닌 사람이건만 감사하게도 당시 운영진 분들이 저를 예뻐해 주신 덕분에 거의 반 스탭처럼 특정 게시판의 운영권을 갖게 된 적도 있었고, 저만 글을 작성할 수 있는 게시판을 갖게 된 적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한글패치와는 아무 관계 없는 분야에서 말이죠...

 

그러다가 제 개인적인 일로 좀 분란을 일으키기도 했고, 국내의 동방 프로젝트에 대한 인기도 차츰 사그러들어 가고, 분란은 가라앉았지만 현생이 바빠지기도 하고 해서 그런 감투는 모두 내려놓고 그저 신작 나올 때마다 패치만 만드는 사람 A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저의 10대 중반 시절부터 쭉 함께한 동방넷이라는 공간에는 애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애착을 이제는 내려놓아야 할 듯합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리라 생각합니다만, 바로 전 동방넷의 수장이었던 플레어님 역시 동방넷의 시초부터 함께했던 틀ㄸ 아니 원로 멤버이자 저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지대한 공헌을 바친 분입니다. 위에 적은 제가 일으킨 분란 때문에 지금은 사이가 조금 데면데면하지만, 한때는 플레냥이라는 애칭(?)으로 부를 만큼 내적 친밀감을 갖고 있기도 한 분이죠. 지금 이 분이 현재 카페의 수장이신 공룡님의 횡포로 인해 카페에서 퇴출되셨습니다. 저는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직접 보지도, 겪지도 않았기에 대놓고 악감정을 느끼지는 않습니다만, 적어도 제가 여태 알고, 기억하고 있던 동방넷이 아니게 되었다는 건 확실히 느끼기에 너무나도 유감스럽습니다. 제가 앞서 분란을 일으켰다가 감투를 벗었던 것처럼, 현 수장님 또한 분란을 일으킨 데 대해 책임을 지고 감투를 내려놓으셨으면 합니다.

 

물론 감투를 내려놓으실 분으로 보이지는 않고, 그럼에도 저는 이렇게 직접적으로 입장을 드러내 버렸으니, 이제 저 또한 동방넷에서 소리소문없이 흔적이 지워지겠네요. 애착이 컸던 만큼 아쉬움도 너무 큽니다. 어지간하면 흑역사인 옛날 글을 지울 법도 한데 괜히 들춰보다 보면 흐뭇해서 계속 두고 있는 글도 많고... 마치 어릴 적 앨범 같은 느낌이었는데, 이젠 더 이상 앨범을 들춰보지 못하게 될 것 같네요. 지워지기 전에 최대한 많이 톺아보고 가야겠습니다.

 

태초부터 시작하여 긴 시간 몸담았던 동방넷에 이제는 작별을 고해야 할 것 같습니다. 흔적이 지워지지 않는다면 다시 돌아오겠죠? 뭐 그래도 국내 동방 프로젝트 커뮤니티가 동방넷만 있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활성도도 1위가 아니게 된 지 오래고) 하니 동방 관련 활동 자체는 계속 하겠지만요. 그래도 서운하긴 하네요. 모쪼록 옳은 방향으로 일이 풀렸으면 좋겠습니다만, 그럴 가능성이 워낙 낮다 보니 뜻 있는 분들이 모여 새로운 동방 커뮤니티 공간을 새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 곳이 예전의 동방넷을 계승한다고 볼 수 있으니, 여기까지 글을 읽어 주신 분들께서는 https://cafe.naver.com/dongbangnetdeadlol 로 오시기 바랍니다. 도메인의 상태가?

예전에 동방 프로젝트 갤러리도 불미스러운 일로 인해 상하이앨리스환악단 마이너 갤러리로 계승된 적이 있는데, 어째 국내 동방 프로젝트 커뮤니티들이 전부 모종의 사건으로 왕위를 계승 중이네요. 뭐, 물갈이하기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수단이니까요. 저도 이제 동방넷이 아닌 이 카페에서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므로, 모쪼록 많은 이탈(?)을 부탁드립니다. 그럼 모두들 안경!

 

𝕭𝖊𝕲𝖊𝖒